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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코딩: 추석 연휴에 자녀교육에 대하여....

많은 부모님이 이렇게 애기를 합니다.

"다 너 잘되라고 내가 이렇게 한다" 라고요.

그 말은 아이들에게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역으로 영향이 작용합니다.

부모님들은 할만큼 하다가 "나도 모르겠다 너 인생 알아서 해라!" ㅎㅎㅎ.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교육이고 애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자녀에게 행동하면 , 자식과의 관계도 멀어지고, 교육 성과도 없습니다.

그리고 공부에 조건을 걸면 안됩니다. "가령 1등하면 00을 해주겠다" 등등 .

그러면 자녀와 조건 관계가 형성이 되고 , 나중에 서로가 갑을 관계로 변질될 확률이 많아집니다.

제 경우에는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아들과 나의 관계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는 마음으로 초등, 중등, 고등 까지를 유지해왔습니다.

아들이, 고3 때 수능 보기 1주일전, 내가 물었습니다 그냥 별 의미 없이 "공부 잘돼가냐"고요 ㅎㅎ.

막 울더군요 "1주일 뒤면 수능을 보고 , 나중에 점수가 나올텐데 그 점수를 보고 실망할 아빠 생각하면 잠이 안온다" 하면서 울더군요.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냐 ! 아빠는 전혀 안그래, 정말 내 생각만 한다면 너 대학 안가고 내옆에 있는게 난 좋다"," 네가 공부를 하느라 떨어져 살면서 1~2년에 , 아니면 더 긴 시간동안에 얼굴 한번 보기 힘든 거 보다, 내 옆에 있으면서 결혼식도 같이 가고, 막걸리도 사다주고, 담배도 사다주는 아들이 난 정말 좋다, 네 생각 안하고 순전히 내 생각만 한다면 진심이다 ....".

이렇게 애기 하면서 내가 살아보니 " 인생은 잘 안되게 꼭 안 좋은거만은 아니더라" 라고 애기 해줬습니다.....

그 대신 점수에 맞추어 의미 없는 대학을 가지 말고, 군대를 먼저 가느게 어떠니?

그리고 1년뒤 입대를 했습니다

...

...

아들이 군대를 제대하고 조금 쉬더니 나한테 이렇게 애기 했습니다.

"아빠! 나 공부해도 되겠어요?" 그래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초등, 중등, 고등 12년 기간을 공부를 안하고 게임만 하면서 세월을 보낸 아들이 공부를 하겠다고 애기를 했습니다 ㅎㅎ.

정말 무섭게 공부를 하더군요 머리가 아프다고 울면서도 1년간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정시로 대학을 들어갔습니다. 정시 모집 인원이 너무 적어서 내가 "이건 문제가 있는거 같어, 철들어서 나중에 공부 하려고 하는 학생들은 입학하기가 너무 힘들겠다".

그랬더니 멋진 말을 했습니다 " 아빠! 개들은 나놀때 공부 했쟎아요?" ㅎㅎ 그래서 멋지다 해줬습니다.

수능보기전 9월 모의 고사에서 00학원 문과1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국문과에... 그때부터 코딩을 공부하도록 필요성을 느끼게 자주 애기 했습니다.

그러던중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다니던 대학의 컴퓨터 공학과에서 복수전공자를 모집했습니다. 그리고 지원을 하고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 아들이 올해 4학년이 되어서 졸업반이 되었습니다.

다행 스럽게 국문학, 컴퓨터공학 두개의 학위를 가지고 사회에 나갑니다.

이번 여름 방학에 I.T업체에서 인턴을 하며, 사회생활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아들이 몇달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난 세상을 이렇게 살면 될거 같아요".

참 고마웠습니다. 수능 공부를 하면서 "아빠 한테 효도할려고 공부한다" 는 말이 생각나서....

남들이 무시할때 자식을 자랑스러워 하는 부모님이 되시기를.......

추석 연휴 마지막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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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잊은 그대에게....

오늘이 추석이라는 명절인가 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살아온 삶에 명절이 있었나 싶다 ㅎㅎ.

요즘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휴일을 갖고자 노력을 한다면 , 내가 2~30대 시절에는 일년에, 한 360일은 일을 했던 거 같다. 그 6일 정도도 집안 행사가 이유 였던 거 같다.

23세때 아버지 사고난 후 시작했던 우유 배달도 휴일이 따로 없었고, 당구장 청소도 명절이 따로 없었던 거 같다. 명절날도 일찍이 차례를 지내고 청소하러 갔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많이 흐른 오늘도 역시 프로젝트 마무리 하느라 밥 생각도 없이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ㅎㅎ . 옆 책상에선 거래처 팀장님도 자신의 일을 마무리 하느라 열심히 키보드를 두두린다.

아인쉬타인이 이런 애기를 했단다. "어제와 오늘을 똑같이 살면서, 내일이 나아질거를 기대한다면 , 그건 정신병의 초기증상" 이라고 ...

그런 거 보면 난 아직 정신병이 시작되지는 않은 거 같다 ㅎㅎ.

요즘은 프로그래밍 언어 하나를 가지고는 버틸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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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시작한 코딩대회가 벌써 5차년도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담당 하시는 분들은 업무의 소관을 많이 따지는 게 당연한 거 겠지요.

처음에 대회를 만들기 위해서 담당자를 만났을 때,

"아니 교육부가 아닌 통일부가 코딩대회를 여는게 안 맞는거 아니냐"고 나한테 반문을 했습니다.

그때 제가 했던 대답은 "4차 산업시대에 코딩도 못하는 미래세대가 무슨 통일을 하겠냐"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2일쯤 뒤에 이메일로 통일부 후원을 얻어냈습니다.

이번에 5회째 대회를 치루면서 느낀 점은 이렇습니다.

살아오면서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음이지만, 초등학교때 자신이 좋아 하는 방향을 찾는 학생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초등학교 5학년때 제가 좋아 하는 방향을 찾았습니다.

이번 대회도 초등생의 참여도나 아이디어가 많이 돋보이는 대회였습니다. 자신의 작품에 많은 열정도 가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대회를 만든 사람으로서 무어가 모르는 뿌듯함이 스며듭니다.

모쪼록 내년에는 조금더 나아진 참가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

 

목동코딩 코딩대회 코딩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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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코딩: 먹는 즐거움, 입는 즐거움

언젠가 가수 패티킴이 자신은 입는 즐거움을 위해서, 먹는 즐거움을 버렸다고 하는 애기를 들었습니다.

요즘 저도 건강을 위해서 먹는 즐거움을 포기 했습니다.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기 전에는, 조금만 배가 고파도 무언가를 먹는 것에 대하여 당위성을 부여하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물론~ 반응은 체중으로 보답이 돌아 오더라고요 ㅎ.

하지만 패티김 생각이 나서 나도 한번? 하고 건강을 위해서, 입는 즐거움을 선택했습니다. 몇 개월 지난 지금은 한 치수 작은 바지 사이즈와, 줄어든 체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8kg 정도 줄었습니다.

요즘은 배가 고프며 즐거워집니다. 그러면서 아침에 올라갈 체중계가 기다려집니다 ㅎㅎ.

그러다 보니 입는 즐거움은 건강도 덤으로 가져다 주나 봅니다. 요즘 턱걸이 개수가 몇 개 늘었습니다 아마도 힘이 생겼다기 보다는, 체중이 줄어서 일거 같아요

건강하세요 선택이 쌓이면 팔자가 됩니다 ㅎㅎ.

 

 

목동코딩 코딩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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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 않은 인생을 정말 짧게 살았다고 느낌이 듭니다.

무슨 목표나 목적이 나한테 있다기 보다는 가족의 만족을 위해서 살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고, 그것이 또 좋은 비지니스로 연결되기도 했고, 또 잘못 만난 사람으로 인해서 고생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권속" 이라는 말을 되 내인적이 있습니다. 팔자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난다는 뜻이다. 힘들때 정말 자주 만나던 사람도 환경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비슷한 말로 유유상종도 있겠네요.

반대로 무언가 일이 잘 안풀리고 꼬일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다니는 길을 바꾸고, 안 가던 모임을 나가고, 평상시와 다른 생각을 가지는게 어떨까 합니다.

요즘 저는 제일 바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아마 한참때인 30대에도 지금처럼 프로그램을 열심히 개발하지는 않았던거 같습니다.

50에 중풍으로 왼쪽이 완전 마비됐을 때를 생각 하면 , 하루하루가 정말 고맙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나가서 할일이 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는 주치 의사분의 애기를 소중히 새각하며 생활합니다.

병원을 퇴원하면서 , 생각하는 가치관을 완전 바꿔서 후회없이 살려합니다.

그래서 조금 이라도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려고 다니던 길도 바꾸고, 안가던 모임도 나가고 하니 조금씩 생각 못하던 비지니스가 생기곤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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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코딩:코딩교육

연극을 관람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오랜만에 대학로를 가게됐습니다.

대학때는 돈이 없어서 초대권을 구해서 가려다 보니, 관람한 기억이 없나 봅니다. 아무래도 제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에는 연극 공연을 관람한다는 것도 제게는 사치였던거 같습니다. 그러다가 직장을 다니면서 식구들을 부양하다 보니 역시 관람할 기회를 가지지를 못했던거 같습니다.

이번에도 모처럼 이대영교수님이 연출한 연극을 보러가려 했는데 자리가 매진 됐다고 해서

포기 하려다가 자리가 있다는 애기를 듣고 대학로에 가서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일찍 도착을 해서 지나 다니는 젊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두리번 거리면서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예전에 정말 예전에 여기 대학로옆에 서울대 문리대가 있었을때, 구경을 왔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그때가 대학로라는 호칭이 생기기 전이었을 겁니다.

기다리던 친구가 도착해서 같이 공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연극 말미에 가슴을 울리는 감동에 눈을 자주 깜밖이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연극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는데 , 연극을 관람한 거의 모든 관람객이 아쉬운 마음에 집으로 가지 못하고 웅성웅성 모여서 아쉬움을 달래는 장면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다음에 연극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면 종종 관람을 와야겠습니다.

코로나로 갈곳이 없어서 더욱 아쉬운 하루 였습니다....

2021.9.2 목

목동코딩 연극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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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코딩: 어느 탈북 대리운전자 이야기를 다룬 연극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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